[칼럼]"고향은 없어도 영암은 있다" 기부자들이 영암과 사랑에 빠진 이유당신의 지갑을 열게 하는 ‘치명적인 유혹’은 무엇입니까?[국민톡톡TV=이동구 선임기자] 사람의 지갑을 열게 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아니라, 머리에서 지갑까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특히나 내 통장에서 나가는 돈이 '세금'인지 '기부'인지 헷갈리는 모호한 영역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최근 전남 영암군에서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3년 만에 누적 기부액 62억 원 돌파. 지난해에만 전년 대비 179%나 껑충 뛰었습니다. 영암군에 금광이라도 터진 걸까요? 아니면 영암군수님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최면이라도 거신 걸까요? 왜 전국의 기부자들은 하필 '영암'이라는 이름 앞에 기꺼이 자기 지갑을 열었는지, 그 발칙하고도 따뜻한 비밀을 추적해 봤습니다.
‘소멸’이라는 비극을 ‘공감’이라는 축제로 바꾸다 대한민국의 지방 도시들이 마주한 현실은 사실 유머 한 조각 섞기 힘들 만큼 팍팍합니다. '지방 소멸'이라는 무거운 단어가 유령처럼 떠돌죠. 하지만 영암은 이 절박한 상황을 '역사적 맥락'이 아닌 '삶의 맥락'으로 풀었습니다.
단순히 "우리 군이 힘드니 도와주세요"라고 읍소하는 대신,'지정기부'라는 영리한 카드를 꺼냈습니다. 내가 낸 돈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막연한 기부가 아니라, "내 돈은 영암의 아이들이 아플 때 달려갈 소아청소년과 운영비로 써주세요"라고 용처를 못 박은 겁니다. 실제로 소아청소년과 지정기부 사업은 목표액을 조기 달성하고도 추가 모금 4일 만에 1억 원이 넘게 모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부를 넘어, 도시민들이 잃어버린 '공동체적 연대'를 영암이라는 공간을 빌려 실천하고 있다는 사회적 증거이기도 합니다.
무화과에 홀리고, 정성에 항복하다 물론 숭고한 정신만으로 62억 원이 모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영암군의 '밀당' 실력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우선, 답례품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지난해 9월, 무화과 제철 이벤트는 단 3일 만에 완판됐습니다. 이쯤 되면 기부자가 영암군을 돕는 건지, 영암 무화과가 기부자의 입맛을 구원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여기에 '사람 중심의 소통'이라는 무기가 더해집니다. 기부하면 끝인 줄 알았더니, 군청에서 직접 감사 전화와 문자가 옵니다. "주변에 영암 좀 소문내 주세요"라는 구수하고도 절박한(?) 부탁에 기부자들은 '내가 이 동네 주주라도 된 건가' 싶은 묘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죠.
다만,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고액 기부자의 비중은 살짝 줄어들고 소액 기부의 건수가 폭발했다는 점은, 영암이 대중적인 지지는 얻었으나 '큰 손'들을 장기적으로 묶어둘 고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숙제도 남깁니다. 자칫 '이벤트성 기부'에만 치중하다 보면 내실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하죠. 하지만 지금의 영암은 그런 우려마저 '기찬 장터'의 넉넉한 인심으로 덮어버릴 기세입니다.
영암이 선물한 '평생의 인연' 이제 고향사랑기부제는 단순한 지자체 예산 확보 수단을 넘어섰습니다. 그것은 도시인들에게는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지역민들에게는 '내일의 희망'을 선물하는 일종의 사회적 계약입니다. 영암군이 보여준 62억 원의 성과는 결국 "사람의 진심은 숫자로 화답한다"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위대한 진리를 증명했습니다.
다가오는 설 명절, 영암군은 또 한 번 '답례품 특별 증량 이벤트'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기왕 하는 기부라면, 내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 누구의 눈물을 닦아주는지 선명하게 보이는 곳에 투자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당신이 영암에 보낸 그 작은 정성이, 훗날 당신이 지쳤을 때 돌아갈 '평생의 인연'이 되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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